2025년 5월 8일, 가톨릭교회는 새로운 교황, 레오 14세의 선출을 통해 또 한 번의 전환점을 맞이하였다. 특히 이번 교황은 미국 출신이라는 점에서, 교황청의 전통적 정치 중립성 유지에 있어 새로운 과제를 안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고는 종교 기관의 이상과 현실 간 괴리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서 바티칸 은행의 역사와 교황청의 재정 운영 구조를 조망하고자 한다.
가톨릭교회는 수 세기 동안 인류의 도덕적 나침반으로 기능해 왔지만, 그 도덕성이 내부 구조의 투명성과 정직성 위에 구축되어야 한다는 점은 종종 간과되어 왔다. 특히 바티칸 시국 내 종교사업연구소(Istituto per le Opere di Religione, IOR), 즉 바티칸 은행은 신앙 공동체 내에서도 지속적으로 논란의 중심에 놓여 있었던 기관이다.
1942년 교황 비오 12세의 교서에 따라 설립된 바티칸 은행은 본래 전 세계 교회 자산을 관리하며 선한 목적을 지원하기 위해 마련되었다. 그러나 이 은행은 설립 초기부터 고도의 자율성과 기밀성을 기반으로 운영되어 왔으며, 이는 시간이 지나며 외부 감시의 부재, 법적 책임 회피, 그리고 내부 통제력 부족 등 구조적 문제를 야기하였다.
해당 은행은 국제 금융 시스템의 일반적 규제를 벗어난 위치에 있었으며, 이로 인해 은행은 종종 ‘비공식적인 교황청 금고’로 인식되었다. 수익과 지출 내역이 오랜 기간 공개되지 않았다는 점은 특히 종교적 기관이 갖추어야 할 윤리적 책무성과 상반되는 특징으로 지적되어야 한다.
교황 베네딕토 16세 및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0년대 이후 바티칸 은행 개혁을 시도하였다. 금융정보청(AIF) 설치, 외부 회계 감사, 연례 보고서 공개 등은 긍정적인 조치였으나, 여전히 바티칸의 자산 운용은 국제적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23년 기준, 약 54억 유로의 자산을 관리하는 바티칸 은행이 여전히 외부 감시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은, 그간의 개혁이 제도적 구조 개편보다는 사건 수습의 성격에 가까웠음을 보여준다.
가톨릭교회의 도덕성과 권위는 단지 교리적 정당성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그것은 현실 세계에서의 윤리적 실천, 특히 경제적 정의와 투명한 재정 관리 위에서만 설 수 있다. 바티칸 은행의 과거는 단순한 ‘스캔들’이 아닌, 교회의 구조와 권위가 근본적으로 재정의되어야 함을 암시하는 징후로 읽힌다.
오늘날 종교학이 던져야 할 질문은 분명하다.
“종교 권위는 어떤 방식으로 세속 권력과 분리될 수 있는가?”
“신앙의 이름으로 운영되는 자금은 어떻게 윤리적으로 운용되어야 하는가?”
바티칸은 이러한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면, 그 신성함은 지속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