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5월 8일, 로버트 프랜시스 프레보스트 추기경이 교황으로 선출되며 ‘레오 14세’라는 이름을 얻었다. 가톨릭 역사상 첫 미국인 교황이라는 타이틀과 함께, 그는 순식간에 언론이 만들어낸 ‘희망의 아이콘’이 되었다. 그러나 이처럼 압도적인 미화 뒤에는 냉정한 질문이 남는다. 언론이 부여한 레오 14세의 첫인상은 실제 그의 리더십과 얼마나 일치하는가? 이미지 이면에 감춰진 교회의 병폐들은 왜 언급되지 않았는가?
본 글은 바티칸 뉴스, 가톨릭 뉴스 통신(CNA), 내셔널 가톨릭 리포터(NCR) 등 주요 가톨릭 매체들의 초기 보도를 분석하며, 언론이 레오 14세 교황을 어떻게 조형했는지, 또 어떤 문제를 외면했는지를 비판적으로 다룬다.
레오 14세가 미국 출신이라는 점은 대부분의 기사에서 가장 먼저 등장한다. 이는 그가 단순히 한 국가 출신의 교황이라는 사실을 넘어, 미국이라는 초강대국이 상징하는 정치·문화적 헤게모니와 결합돼 보도된다. 가톨릭 뉴스 통신(CNA)부터 뉴욕타임스까지 “역사적 전환점”이라 치켜세우며, 그가 마치 세계 가톨릭을 새로 쓸 인물인 듯한 기대를 조성한다. 페루나 시카고 언론은 그를 “자국 출신 교황”으로 소비하며 정체성을 지역화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지역 기반의 정체성 부각은 정작 교황이라는 자리의 보편성과 초국가성을 왜곡하며, 미디어가 만든 ‘소속감 장사’에 지나지 않는다.
이탈리아 헬스장 트레이너 일화는 이 이미지 전략의 대표 사례다. 교황이 신분을 숨긴 채 운동했다는 에피소드는, 수차례 반복 보도되며 레오 14세를 ‘평범한 시민’이자 ‘우리 옆집 같은 신부님’으로 연출했다. 트레이너가 증언한 그의 체지방률, 근육량, 친절함은 거의 스포츠 스타 수준의 서사다.
그러나 이런 인간미 마케팅은 실질적 개혁 문제를 가리는 효과를 낳는다. 개인 PT를 받을 수 있는 여건 자체가 성직자의 특권임에도, 이를 ‘겸손’으로 포장하는 보도는 현실을 왜곡한다. 인간적인 교황이라는 이미지가 오히려 교회 권위의 비판 가능성을 무디게 만드는 장치로 작동하는 것이다.
언론은 레오 14세를 프란치스코 교황의 개혁 노선을 계승할 인물로 소개한다. 그는 실제로도 “모두에게 평화를”이라는 표현을 반복하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을 강조했다. 바티칸 뉴스와 CNA는 그를 “시노달리티의 대표자”, “현장형 리더”라 명명한다.
그러나 이것은 선언에 불과하다. 교황청 개혁은 여전히 미완이고, 시노드 제도조차 세계 각지에서 이견과 충돌을 낳고 있다. 언론은 레오 14세가 제시한 몇 문장의 슬로건을 근거로 그를 개혁의 후계자로 부상시켰지만, 실질적 개혁의 진척 여부는 거의 다뤄지지 않는다.
언론이 반복한 키워드는 분명했다. “첫 ○○ 교황”, “소탈한”, “친근한”, “진흙 장화”, “목자”, “헬스장”, “피자”, “야구”, “운동광” 같은 일상적 언어는 대중의 심리적 거리를 의도적으로 좁히기 위한 장치다.
심지어 “교황님의 근육량은 이상적”이라는 문장은, 종교 지도자의 리더십을 육체적 스펙과 감성적 에피소드로 환원시키는 희화화에 가깝다. 이러한 수사는 독자의 이성적 판단을 마비시키며, 미디어가 만든 교황이라는 허상을 반복 학습하게 만든다. 이는 일종의 정서적 세뇌이며, 전략적 인식조작이다.
레오 14세가 주교 시절 어떤 방식으로 성범죄 문제에 대응했는지, 어떤 피해자들과 대면했는지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다. 성직자 성범죄 문제는 현재도 진행 중인 교회의 암적 현실이며, 피해자들은 여전히 싸우고 있다.
하지만 초기 언론은 침묵을 선택했다. “친근한 교황”이란 이미지 아래, 성범죄 문제는 기사 우선순위에서 밀려났고, 피해자의 목소리는 편집되었다. 이는 단순한 누락이 아니라, 전략적 외면이다.
레오 14세가 여성의 참여를 일부 확대했다는 점은 반복 강조되지만, 여성 서품 문제나 성평등한 의사결정 구조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다. 분홍 연기를 피우며 시위한 여성단체의 외침도 단순 퍼포먼스로 처리되었을 뿐, 구조적 분석은 사라졌다.
‘여성에게 열려 있다’는 표현은 개혁의 핵심이 아니라, 변화를 가장한 정지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장치로 보인다.
우크라이나, 중동, 중국 문제는 여전히 교황청 외교의 난제다. 그러나 언론은 레오 14세의 “중재 의지”만을 부각하며, 현실적 외교 난맥상은 외면한다. 프란치스코 시대의 외교 실패는 언급되지 않고, 레오 14세는 문제를 마주하기도 전에 ‘평화의 지도자’가 되었다.
실제 외교 성과는 없고, 메시지만 있는 상태에서 이뤄지는 찬사는 공허한 예찬일 뿐이다.
레오 14세 교황에 대한 초기 언론 서사는 과거 프란치스코 시대와 판박이다. 당시에도 안경, 가방, 신문구독 해지 같은 일화가 교황의 ‘소박함’으로 재현되었다. 이제는 테니스, 야구, 피자, 근육량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이런 인간미 서사는 사람들을 미소 짓게 할 수 있지만, 그것이 교회의 시스템적 폭력, 권력 독점, 성차별, 재정 불투명성 문제를 가리는 도구로 사용될 때, 그것은 명백한 정치적 연출이다.
레오 14세 교황의 등장은 교회의 새로운 시작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시작은 지나치게 조작된 이미지와 언론의 전략적 선택 위에 세워졌다.
가톨릭 언론은 여전히 현실보다는 희망을 말하고, 고통보다는 미소를 택한다. 그들은 교황을 인간이 아닌 ‘상징’으로 소비하며, 권력의 얼굴을 아름답게 포장하는 데 몰두해왔다.
진정한 교회 개혁은 트레이너의 입을 빌린 근육 자랑이 아니라, 침묵당한 피해자의 목소리를 복원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교황의 진짜 이미지는, 언론이 아니라 그가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침묵을 깰 것인가에 따라 만들어질 것이다.
가톨릭 언론은 이제 더 이상 교황의 이미지를 생산하는 공장이어선 안 된다. 그들은 교회 내부의 그늘을 비추고, 진실을 직시하며, 때로는 교황조차 비판할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참고출처 - 주요 가톨릭 매체 및 언론 보도 인용 (Vatican News, Catholic News Agency, National Catholic Reporter 등)
1. CNA: Who is Pope Leo XIV? (2025.5.8 보도) 첫 미국인 교황 언급
2. Vatican News: Biography of Pope Leo XIV (2025.5.8) 아우구스티노회 출신 교황 소개
3. NCR(Global Sisters Report): American? Peruvian? French? Augustinian... (2025.5.22) 국가별 보도 경향
4. 연합뉴스: “회원님이 왜 교황복을”… (2025.5.19) 헬스장 일화 – 익명으로 다닌 사실과 트레이너 증언, 트레이너의 교황 체력 평가, 교황 취미 관련 언급
5. NCR: 'A pope in muddy boots': Viral photos... (2025.5.20) 홍수 현장 목회 이미지
6. CNA: Synod undersecretary: Leo XIV... (2025.5.22) 시노드 정신과 소통 강조
7. NCR(AP통신): Pope Leo XIV pledges to pursue the reforms... (2025.5.10) 프란치스코 개혁 계승 발언
8. OSV News: Pope Leo XIV: the peacemaker... (2025.5.12) 첫 인사 “평화가 함께” 및 초반 행보
9. NCR(Opinion): Early reactions to Pope Leo XIV... (2025.5.16, M. Winters) 모제타 착용 해석 논쟁
10. Rorate Caeli 블로그: LEO XIV: Challenges... (2025.5.9) 교황이 직면한 과제 열거
11. TIME: Biggest Challenges Pope Leo XIV Faces (2025.5.8) 성학대 문제 등 지속 과제